경주의 역사문화 발굴과 보존, 계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경주시대’는 창간을 맞아 ‘경주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를 기획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로 힘들었던 1950년대 경주시민들에게 지식의 장, 공부하는 장으로 기능을 했던 경주도서관(당시 경주읍립도서관)의 설립과정과 역할, 도서관을 위해 헌신한 엄대섭 선생의 발자취를 준비했다.[편집자 주]경주시민의 공동서재 공공도서관 (3)관우회(館友會)에서 독서회까지 ‘도서관 친구들’ 관우회(館友會)엄대섭 관장이 울산사립무료도서관을 접고 경주로 옮길 때 힘이 되어준 것이 ‘관우회館友會’다.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책을 모으는 친구들’이라는 뜻으로 경주읍립도서관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결성되었다고는 하나 정확히 언제 발족했는지, 참여자와 활동 내용 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경주시사慶州市史;Ⅱ』 ‘6편 문화·예술 분야. 14. 경주시립도서관’에 ‘도서관 설립 후원단체로 관우회館友會(회장 김종준金鍾埈)가 조직되어 도서의 수집과 독서보급 운동을 전개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라는 기록과 김윤근 선생의 기억으로 정리했다. 김윤근 선생도 어린 시절 옆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라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회원 2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가운데 초대 경주 민선시장 김교식1955.9.1.~1959.9.1, 경주박물관장 진홍섭, 민속공예가 윤경렬, 김태중(교사), 금속공예가 김종준, 서양화가 김준식, 최상문, 도서관장 엄대섭이 있었다는 정도 기억하고 있다.    경주박물관장 진홍섭은 국립중앙박물관 개성 분관장을 거쳐 경주 분관장으로 있었다. 그 후 프랑스 유학을 다녀와서 문화재관리국 문화재과장을 지냈고, 이화여대 박물관장을 역임했다. 경주박물관장 시절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를 개설하기도 했다.    윤경렬 선생은 당시 초등학교 미술 강사이자 민속공예가로 진홍섭 관장 이후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와 ‘경주시립도서관 어린이향토학교’, ‘경주시립도서관 독서회’를 이끌었다. 김태중도 교사 출신으로 나중에 경주시 문화원장을 지냈고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와 ‘경주시립도서관 어린이향토학교’ 지도교사로도 활동했다.    김종준 선생은 엄 관장의 영향으로 경주읍립도서관 직원으로 근무를 시작하여 엄 관장 뒤를 이어 1962년 9월부터 1966년 6월까지 제2대 경주시립도서관장을 맡았고, 준사서 자격증도 취득했으나 자리를 옮겨 1966년 7월부터 1969년 12월까지 <마을문고진흥회>에서 함께 했다. 김윤근 선생은 관우회가 1952년쯤 조직된 것으로 추측하나 아마도 엄 관장이 울산사립무료도서관을 정리한 1953년에 발족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엄 관장이 생전에 작성한 이력서에 의하면 1953년 3월 2일자로 울산사립무료도서관을 정리하고, 5월 8일부터 경주읍립도서관 촉탁직 관장을 맡아서 7월 1일 도서관을 개관했다.    엄 관장은 울산에서 운영하던 사립도서관 시설을 경주읍에 기부하여 공립도서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뜻을 건의하여 긍정적 답변을 들었으나, 울산의 도서관을 접기 전에 미리 경주 지역사회를 파악하기 위해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가능성을 가늠해 보았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이해를 받지 못한다면 도서관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김종준을 통해 박물관과 문화원을 중심으로 자주 모이는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도서관 설립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여, 그들이 도서관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환영했다.    그리고 김종준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인사가 관우회를 조직하여 도서관 설립과 운영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지역사회에 영향력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후원회 성격의 단체가 있다는 것으로도 도서관 설립에 힘이 될 수 있다. 경주읍립도서관을 개관 준비할 때 관우회가 나서서 도서 수집 운동을 전개하여 회원들이 각자 소장 도서를 내기도 하고, 각 가정에서 나오기도 하여 2천여 권의 책을 모았다. 시민을 대상으로 도서를 수집하는 것은 도서관 설립을 알리고, 주민들은 단 한 권의 책을 보태더라도 도서관에 호의적인 이용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저녁 도서관에 모여 ‘지역사회 발전에 관한 연구와 토론회’를 하는 등 경주읍립도서관 설립과 발전에 힘을 더하고자 했다.   1959년 8월 26일 사정동에 독립건물을 신축 개관하여 시립도서관으로서 면모를 갖추자 관우회는 후원회의 기능에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서 독서회로 활동했다.    경주시립도서관 연혁에도 1959년 9월 1일 경주시립도서관 독서회가 발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독서회는 1956년에 조직하여 읍사무소 시절부터 있었으나 관우회가 독서회로 전환하면서 공식화한 것으로 보인다. 관우회 회원들이 지도자가 된 경주시립도서관 독서회는 윤경렬 선생이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며, 지식층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만큼 활동이 활발하고 토론내용도 수준이 높았다고 한다.    본인들의 독서회 활동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부 독서회를 맡아서 지도하며 경주의 문화재 보호에도 앞장서고, 앞으로 사회의 주역이 될 아랫세대를 끌어주는 지도자적 위치에서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영했다. 관우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서관 친구들Friends of Library’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엄 관장이 도서관 운영과 지식의 대중화 운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영향을 미친 「圖書館の 實際的 經營」이란 책 ‘제3장 도서관후원회와 도서관협회’ 편에 도서관관우회圖書館館友會가 소개되어 있다. 저자 오또베 센자브로乙部泉三郞는 자신이 도서관장으로 있는 나가노長野현 뿐 아니라 다른 지역 공공도서관의 관우회 회칙이나 운영사례도 소개했다.    일본 ‘도서관관우회’는 ‘도서관 진흥을 위한 도서수집 그리고 이용자와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한다. 목적 달성을 위하여 도서관 이용 촉진 관련 사업, 기관지 발행, 견학이나 야유회 같은 행사, 기타 적합한 사업을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는 네트워크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요즘 우리나라의 ‘도서관 친구들’ 같이 연계 활동은 없었고, 도서관별 활동을 했는데 주로 후원금을 내는 것으로 도서관을 지원했다.    엄 관장은 이 책에서 ‘관우회’를 보고 그 영향으로 경주읍립도서관에 의지가 되어줄 후원회를 생각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타지에서 들어온 본인보다 경주 지역사회 문화계 인사이자 도서관 사업을 잘 이해하고 뜻이 맞는 김종준이 주관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그가 관우회 회장을 맡았으나 엄 관장의 뜻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물론 경주시립도서관 ‘관우회’와 요즘 ‘도서관 친구들’은 시대와 사회 환경에 따라 하는 일이 조금씩 달라졌겠으나 취지와 목적 등 지향성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경주시립도서관 관우회는 일본과 달리 후원금 모금보다는 도서관을 위해 직접 봉사하고, 신축도서관 건립 문제 등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경주시립도서관이 독립건물을 갖추는 등 후원회로서 역할을 어느 정도 완수하자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서 독서회를 이끌고 각종 문화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했다. 향토문화발전을 위해 읽고 실천하는 독서회 경주시립도서관 독서회는 1956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남아있는 자료와 기록이 명확하지 않아 오래전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약간의 혼돈이 있기도 하고, 여러 자료에 흩어진 내용을 찾아 퍼즐을 맞추듯 정리해야 했다.   ‘경주시립도서관 독서회’는 1956년에 조직되어 관우회가 지도를 맡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근거로는 독서회 배지에 1956년이란 표시가 있고, 관우회가 지식층들로 구성된 도서관 후원 모임으로 교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도서관 후원 활동으로 독서회 지도를 했을 것이라 본다.    김윤근 선생도 1958년 중학교 2학년 때 독서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독서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59년 신축 건물로 이전한 후에는 관우회가 독서회로 전환하면서 자신들의 독서활동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부 독서회도 지도했다.   1965년 당시 군사정권이 전국에 난립해 있는 민간단체를 정비하고자 일제히 해산시킬 때 경주시립도서관 독서회도 회원번호 688번을 마지막으로 해산되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윤근 선생은 이철수, 이창훈 등과 뜻을 모아 학생부 독서회만 운영하겠다는 조건으로 그해 11월 독서회를 부활하여 ‘셔블독서회’‘셔블’은 신라 때부터 동쪽 벌판 금성, 경주를 부르는 서라벌의 옛말이라는 새 이름으로 1985년까지 이끌었다. 그 후 도서관 사정과 김윤근 선생이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고, 복직 후 타지로 발령을 받는 등의 문제로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경주시립도서관 독서회는 회칙에 자신들의 목적을 이렇게 적어두었다.  ‘본회는 독서에서 얻은 바를 실천에 옮김으로써 우리 고장의 자력갱생과 향토문화건설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독서회원들은 책이 귀한 시절에 읽고 토론하는 독서회 활동에 자부심이 있었다.    엄 관장은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읽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사람을 키우는 지역사회의 어머니 같은 곳이다. 책 읽는 사람은 읽지 않는 사람보다 뭔가 다르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회원들은 그 뜻을 새기며 단순히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봉사와 실천으로 이어갔다.    그 예로 시립도서관이 신축되자 직원들을 도와서 주변 자갈밭을 화단으로 가꾸고, 매주 일요일에는 마을청소 등 지역 봉사 활동을 했다. 1959년 9월 관우회가 독서회로 전환한 후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여 독서회원 수도 174명으로 늘어났고, 각 계층에 따라 일반부와 부녀부, 학생부로 나누어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각부별로 열람실에 모여 독서회 활동을 했다. 독서토론뿐 아니라 시사와 사회문제를 토론하고, 민주시민으로 가는 길을 논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시청각실에 모여 음악과 서양미술 감상 등 해설을 들으며 문화예술에 관한 교양을 높이기도 했다. 독서회는 『덴막 갱생운동사更生運動史』김영환 저, 신교출판사, 1959를 반드시 읽어야 했다. 저자 김영환 목사는 평양 숭실대학교를 졸업하고 경남지역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동아대학교를 설립하고, 복지시설도 운영했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겨레의 가슴에 뜨거운 열정이 없다고 비판하고, 덴마크가 뜨거운 열정으로 국민정신을 개조하여 성공한 사례를 본보기로 우리도 분발하자고 호소하였다. 첫 장에 저자가 조국에 바치는 뜨거운 ‘헌시’가 있다. ‘이 책을 사랑하는 조국에 바치노라.심상치 않은 너의 숨소리 그리고 너의 상해 가는 얼굴, 너의 타는 입술, 너의 병은 골수에 깊이 들어갔구나,너를 바라보고 맥도 짚어 보고, 애를 태워도 본다.그렇다고 무슨 효과가 날리 없건만......나는 너의 병을 진단할 의술도 없고, 너의 괴로움을 덜어줄 방법도 없다.그렇다고 죽기를 기다릴까? 혹 기적이나 바랄까?* * *나는 하나의 진단서를 발견했다.너와 같은 병에 걸렸다가 살아난 경험담이다.나는 이것을 발견하고 미친 듯이 기뻐하였다.이것이면 너를 회생시킬 자신이 선다.이것은 저 북구 「덴막」의 갱생사다.「덴막」은 일찍 너와 같은 병에 걸렸더니라.그런데 오늘은 세계 모범농업국으로 등장했다.그뿐 아니라 공업국으로 굴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나는 너를 위하여 정성의 재료를 모아서 이 책을 엮어 보았다.’ - 기해 원단 저자 - 이 책은 덴마크 중흥을 이끈 그룬트비1783 ~ 1872의 정신운동, 국민교육, 구국운동, 국토개척, 농업혁명, 협동조합, 도서관운동, 국토미화운동, 기적적인 공업운동, 국민보건 등을 모두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목할 내용은 ‘도서관 운동’을 다룬 일곱 번째 단원이다. 제7장은 ‘책을 읽는 백성은 향상하고 책을 멀리하는 백성은 퇴보한다’로 시작하여 ‘대학 졸업장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이 힘’이며, 도서관은 국민을 기르는 어머니이다. 어린이도서관과 특수도서관 그리고 독서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면서 도서관이 국가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판 크기에 세로줄 쓰기 270여 쪽짜리 작은 책이지만 마치 국가개혁 운동의 교과서 같다.   엄 관장은 도서관을 통해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나고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가슴 속이 꽉 차 있었기에 이 책 속에 들어있는 한 구절 한 구절이 더 깊게 와 닿았던 것일까? 직접 읽고 강연을 하기도 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까지 겪으면서 대다수 사람이 무식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은 무지와 가난에서 탈출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숙명으로 생각하고 하루하루 주어진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했고,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큰돈을 벌어 성공한 엄 관장은 누구보다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식과 교육을 통한 정신 개조의 절실함을 느꼈던 것 같다. 독서회원들에게도 우리가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와 비슷한 환경의 덴마크가 황무지 나라에서 어떻게 최대의 낙농업국이자 공업국이 되었는지 알기 위해 반드시 이 책을 읽을 것과 지역사회 봉사와 실천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런 영향으로 앞에서 소개한 것과 같이 독서회원들은 도서관 주변 조경활동을 하는 등 자원봉사를 많이 했다. 회원이 아닌 학생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독서회 정회원이 되어 독서회원 배지를 받고 도서대출 우대회원이 되었다. 이때 자원봉사 관리를 순회문고 담당 고용수 씨가 했는데 엄격하고 철저하기로 유명하여 단 몇 분도 봐주지 않았다고 한다.    독서회 배지는 윤경렬 선생이 도안했다. 세 사람이 둥글게 모여 앉아 책을 펼쳐 진리를 탐구하고, 그 가운데는 진리와 희망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형상이다. 성인 독서회원은 검정 바탕에 은색 문양을, 학생부는 청색 바탕에 은색 문양이 들어간 배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학생들은 교복에 배지를 달고 다니며 시립도서관 독서회원이란 자부심이 컸고,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독서회원들은 늘 책을 가까이하며 우리 문화의 중요성을 배우고, 다방면의 지식과 견문을 넓히며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 삶의 가치를 배우고 영향도 받았다.    그래서 경주 출신 유명인사 가운데는 독서회 출신이 많다고 한다. 1985년 이후로 독서회 활동은 중단되었지만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 안부를 전하고, 가끔씩 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2015년에는 경주의 한 호텔에서 ‘셔블독서회 창립 50주년 기념’ 행사를 가지고 도서관에서 활동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돈독한 우정과 동지애를 나누었다. 독서회원 출신들은 사회에 나아가서도 배운 것을 실천하며 각자 위치에서 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독서회 발표자료, 독서회원 출석부, 독서회 일지, 시립도서관 독서회 지도 안, (소장; 김윤근) 독서회 중고등부 야유회, 독서회 선배회원 고교졸업식(소장: 김윤근) 정선애 작가는? 대학시절 마을문고 운동 동아리활동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도서관학과 4학년 때 엄대섭 회장을 직접 찾아뵙고, <대한도서관연구회>에서 도서관운동 조수로 일했다. 그 후 <대한도서관연구회> 에서 훈련받고 일한 자부심을 가지고 서울시 새마을이동도서관 사서, 한국도서관협회, 학교도서관 등을 거쳐 2006년부 터 관악구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2022년 퇴직했다. 2021년 엄대섭 선생의 공공도서관 개혁운동 이야기 「지금 쓰지 않으면 잊혀질 이야기」를 썼다.  
최종편집: 2025-05-01 00: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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