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정선애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원)3. 답사 둘째 날3.1 대왕암과 감은사 둘째 날 새벽 5시 반, 다섯 명의 일행은 차를 타고 감포 앞바다로 향했다. 날씨가 흐려 일출은 볼 수는 없었으나 수평선에 비친 아침노을과 해변에서 200m 떨어져 있는 대왕암 경관은 볼만했다.
당초 예정에 없었던 대왕암 바다를 찾은 것은 윤경렬 선생의 작은할아버지이자 1920년 종로구 취운정에 경성도서관을 설립한 윤익선 선생 때문이었다. 1920년 11월 천도교 도움을 받아 종로구 취운정에 경성도서관을 설립했다가 1922년 이범승의 경성도서관에 인도한 바 있는 윤익선 선생은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나 1936년 이후 일제에 동조한 일이 밝혀져 서훈이 취소되었다. 그로인해 2010년 국립묘지에서 파묘되자 윤경렬 선생의 장남 윤광주 님이 유해를 거두어 경주 앞바다 문무대왕 대왕릉이 있는 곳에서 동해로 떠나보낸 이야기는 정선애 회원 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왕 온 김에 역사의 엄중함을 되새겨 볼 겸 이른 시간에 감포 앞 바다를 찾은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감은사지에 들러 문무대왕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웠다는 옛 사찰을 상상하며 둘러보니 지금은 우뚝 선 두 개의 탑과 그간 발굴된 돌들만이 나란히 누워있다. 감은사지 옆에 몇 채 안되는 집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감은사지 역사자료실 슈퍼 담배’ 가게가 눈에 띄었다. 신라문화에 관심이 많은 지역주민 누군가가 운영하는 슈퍼이겠지 생각하면서 그래도 꼭 방문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옮겨갔다.
이른 아침이라 유리문이 닫혀 있었는데 우리 일행이 기웃거리자 주인이 문을 열어 주었다. 놀랍게도 그 안은 작은 지역 박물관이었다. 성덕대왕 신종 탁본이며 사계절 감은사지 사진, 기타 신라시대 토기며 경주의 지역 문화를 일부 모아 전시해 놓았다. 아침부터 생각지도 못한 좋은 볼거리였다. 새벽잠을 줄이고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2 경주시립도서관 황성공원 경주시립도서관을 방문했다. 담당 이현주 선생 안내로 최자숙 팀장 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선애 회원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두 번 방문했을 때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라고 했다.
자리에 함께한 이지연 사서는 정선애 회원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된 사건(?), 즉 2021년 김보일 회원이 학생들과 경주시립도서관을 들렸을 때 『경주새마을운동50년사』(경주새마을지회, 2020)에 실린 김윤근 선생의 경주도서관에 관한 글을 전달해 주었고, 김 회원이 그 이야기를 연구회 회원들과 공유하면서 오래전 경주도서관 이야기를 발굴하여 책이 출간되고, 연구회가 경주 탐방을 추진하도록 한 실질적 역할을 한 분이다.
얼마 전까지도 경주도서관 70주년 기념행사나 읍립도서관 터에 표지석 설치 제안 등에 소극적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 도서관 팀장을 비롯하여 여러 직원이 적극적으로 도서관 70주년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하니 우리도 무척 고무되었다. 경주시립도서관은 예전에 이종기 선생이 기증한 ‘영국문고(永國文庫)가 있어 역시 들어가 직접 볼 수 있었다.
경주시립도서관은 조만간 한국수력원자력의 보상금을 활용해서 약 3만여 평에 이르는 계림고등학교 사거리 황성공원 내 부지에 새 도서관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해서 그곳도 직접 가 보았다. 70년 전 엄대섭 선생의 노력으로 시작된 경주시의 도서관 문화가 또 한 번의 도약을 할 것이라는 사실에 잔뜩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3.3 하동 민속공예촌 다음 일정으로 제2대 김종준 관장의 유적지 하동 민속공예촌으로 향했다. 하동 민속공예촌 경주유기공방 ’놋비채‘를 방문하여 김종준 선생의 뒤를 잇고 있는 김완수 사장을 만났다.
김종준 선생은 1953년 엄대섭 선생이 경주에 도서관을 설립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소개하고, 관우회 회장을 맡아서 이끌다가 1955년부터는 아예 도서관 직원으로 들어가 엄 관장을 도왔다.
엄대섭 관장이 마을문고를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도서관을 떠나면서 자신을 이어 관장의 일을 맡도록 했다. 그러다가 김 관장도 엄 선생을 따라 마을문고에 합류했다. 김종준 선생은 경주시립도서관 시절에도 참으로 많은 일을 했고, 마을문고 시절에도 빠른 확산과 성장에 크게 기여한 분이다.
그러나 1970년 마을문고의 재정난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마을문고를 떠나 경주로 돌아와 본업인 금속공예가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한편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2014년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개교 60주년을 맞아 예전 어려운 사정으로 학교를 닫을 수밖에 없었던 때에 경주시립도서관 시청각실을 기꺼이 내주어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 김종준 관장께 감사패와 그 뜻을 전했다.
김종준 관장은 2004년에 세상을 떠났으나 늦게라도 그 은혜에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김 관장께서 마을문고 일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있는 동안은 개인적으로 생활이 많이 어려웠다고 한다. 이번에 김종준 선생의 마을문고 시절을 함께 했던 이용남 교수와 김완수 사장의 만남으로 가족들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우리 일행 모두 어려운 시기에 헌신하신 김종준 선생이나 그 가족들께 모두 감사하는 마음이다.
3.4 불국사 불국사는 누구나 아는 신라 사찰이지만 경주도서관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엄대섭 관장은 경주가 신라의 옛 도시라는 것과 향토문화재를 귀중하게 생각하여 도서관에 향토자료실을 만들고 문화재를 전시하여 경주의 문화재를 외부인들에게도 알리고 연구하는데 자료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 후 경주시립도서관을 떠나 마을문고 운동에 전념하고 있던 1966년 어느 날, 경주지방 마을문고를 순회하던 중 불국사에 들렀다가 석가탑을 보수하는 인부들이 문화재를 함부로 다루고, 석가탑 3층 옥개석을 깨뜨리고도 파편들(9조각)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여 흙더미 속에서 발길에 밟히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엄 선생은 그 파편들을 수습하여 서울로 가져와서 오동나무 상자에 귀하게 보관하고, 뜻있는 사람들과 ‘우리문화재아낌회’를 구성하고 엄 선생이 부회장 역을 맡고 마을문고진흥회에 임시 사무소를 두었다. 아낌회는 1967년 1월 29일 불국사 범영루 앞에 언론을 모아 놓고 ‘우리문화재아낌회 선언식’을 가져 범국민적으로 문화재에 대해 인식을 제고시키고자 했다.
이번 탐방에서 역사적인 ‘우리문화재아낌회 선언식’ 현장이던 범영루와 그 계기가 되었던 석가탑, 당시 석가탑 보수과정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이 있는 불교박물관 등과 아울러 천년고찰을 둘러봤다. 마침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 불국사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들은 1960년대 이러한 사건과 아낌회 활동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하니,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엄대섭 선생은 도서관운동이 단지 책과 독서보급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에 눈 뜰 수 있도록 하고 향토문화를 소중히 여기며 보호하는 운동도 함께 한 것이다.
4. 마을문고를 통한 지식의 대중화 앞의 경주중앙도서관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과 같이 경주는 우리나라 민중들에게 지식을 제공한 ‘지식대중화’의 산실이다. 그전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책이나 지식이란 특권층에만 주어졌고, 일반 대중들은 지식을 접할 기회조차 갖지 못 했다.
엄대섭 선생은 무식하여 가난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일반 대중이 지식을 통하여 깨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도서관을 설립 운영하면서 도서관을 찾지 않는 농어촌의 지역주민들을 위해 순회문고를 운영했다. 그러나 헌책을 수집하여 일방적으로 보내기 방법은 독서운동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창안한 것이 마을문고이다.
마을문고는 1961년 경주의 오릉근처 탑마을문고를 제1호로 변두리 농어촌지역에서 시범운영 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얻자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1962년 「마을문고 진흥회」를 발족한 것이다. 지역공공도서관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공공도서관 서비스와 전문성으로 상호 보완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구상하였으나 당시 지방에 공공도서관이 설립되지 못했던 때라 마을문고가 행정의 지원을 받으며 독자적으로 운영되었다.
엄대섭 선생은 마을문고 보급 운동만 한 것이 아니라 설치한 마을문고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문고독서회원과 대표자들을 순회지도와 집합교육을 통하여 지도했다. 그 한 방법으로 전국의 마을문고 대표자들을 모아 교육과 격려하는 자리가 ‘전국마을문고대표자대회’ 나중에는 ‘전국마을문고지도자대회’로 개최되었다. 1965년 11월 전국마을문고대표자대회 첫 번째 행사가 바로 경주시에서 열렸던 것도 이번 탐방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11월 11일~13일 일정으로 경주여자중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렸던 대회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11월 16일자에 당시 최일남(1932~, 소설가, 당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교육센터”라는 제목의 기사로 게재했다. 기사에는 여러 마을문고 실천 사례도 소개되어 있고, 대회 사진도 1장도 수록했다. 대회와 관련된 사진을 찾아 ‘국가기록원’까지 검색했으나 더 이상의 사진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신문에 실렸던 이 사진 한 장이 더욱 귀하게 다가왔다. 최 기자는 대회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형세가 초라해 보였지만, 분위기는 기자가 접해 본 어느 대회보다도 진지하고 알뜰해 보였다고 쓰고 있다. 전국마을문고대표자대회, 효과적 방법 진지하게 토의, 자연부락 4만9천 중 4천여 개 설치, ‘행정기관의 협조 아쉽다’1965년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경주여중고 강당에서 열린 제1회 전국마을문고대표자대회. 약 2백명 가까운 ‘대표’들이 집결. 20대 청년도 있는가 하면 40대에 가까워 보이는 아주머니까지, 단발머리의 소녀, 교복을 입은 남자 고등학생도 있었다. 어느 대회보다도 진지하고 알뜰한 대회. 사흘 동안 대회를 통해 ‘농어촌 사람들의 독서운동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끌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체험을 중심으로 토론하는 모습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용남 선생이 마침 당시에는 대학생 신분으로 엄대섭 선생 부름으로 이 대회에 참석했던 것을 기억하셨고, 그중에서도 청년인 강진군수가 나서서 모든 마을에 마을문고 설치를 추진하는 일이나, 충남 보령의 새싹독서회 윤순자 여사의 절미운동, 송아지를 키워서 마을문고를 설치하는 이야기, 연극을 만들어서 마을문고 찬조금을 만들었던 경남 고성의 사례 등등을 기억해 말씀해 주셨다.
옛 기사를 다시 찾아 읽으면서 오래 전 경주시에 모여 마을문고를 통한 지역사회 발전을 논의했던 많은 분들의 뜨거웠던 열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안찬수 처장은 “마을문고 관련한 여러 언론매체의 기사를 정리하여, 기존에 보고되어 있는 마을문고 운동의 역사와 함께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번 한국도서관연구회의 경주 답사는 58년 전, 그러니까 거의 60년 전, 당시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었던 기자의 여행과 비교하면 어떤 것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경주로 향했다”라고 말했다.5. 답사 여행을 마치고 1박 2일 경주시의 도서관 역사 탐방은 여러모로 새롭기도 했으면서도 너무도 오래 잊혀져 있었다는 현실을 확인하는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이번 답사여행을 계기로 경주도서관 설립과 역사를 의식하고, 엄대섭 선생의 도서관 사상과 정신을 한 번 더 상기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경주시립도서관이 7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지난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발굴하고 이어갈 의지를 가지고 있음과 함께 새로 건립될 도서관에 그 역사를 잘 담아내 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경주읍성한옥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런데 그 집이 작가이자 언론인이며 정치가인 유시민 씨의 생가였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비어있던 집이었으나 누군가 인수해서 숙소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 씨는 경주 탑마을 제1호 마을문고 운영자 박동진 선생의 외사촌이기도 하다고 하니, 우연하게 구한 숙소마저도 경주의 도서관 역사와 연결되어 있음에 놀라기도 했다.
근래 들어 여러 도서관에서 자신들 지역의 도서관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민들과 함께 하는 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다각적인 노력들을 통해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 그 안에 담긴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과 도전, 그로부터 이어져 온 오늘날의 도서관 현실을 되짚어보면서 새로운 도서관과 도서관을 통한 민주시민사회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도전의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한국도서관사연구회도 더 연구하면서 새로운 도서관 답사 여행을 기획하고 추진할 것이다. 이번 경주도서관 탐방은 그러한 연구회의 새로운 노력의 시작이 되었다.- 이 답사기는 한국도서관사연구회 경주도서관 답사팀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서 정선애 씨가 정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