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경주도서관을 답사하고(上)
정리=정선애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원)1. 들어가며 ‘한국도서관사연구회’는 지난해 정선애 회원이 『도서관운동가 엄대섭의 발자취를 찾아서; 경주도서관 이야기』(도연문고)를 출간한 것을 계기로 엄대섭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올해가 엄대섭 선생이 1953년 경주읍립도서관을 설립한 것을 기점으로 할 때 경주시립도서관 창립 70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여 드디어 경주시의 도서관 역사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를 통해 70년 전 경주읍립도서관을 설립하고 1962년 9월까지 무보수 촉탁 관장으로 도서관을 이끌어 온 엄대섭 선생의 뜻과 활동의 흔적을 되짚어보고, 지금의 경주시 도서관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경주시 도서관 탐방은 2023년 3월 21일, 22일, 1박 2일 일정으로 준비했다. 아무래도 경주시는 국내 최고 문화관광지이며 거기에 코로나19 상황이 정리되어 봄철 여행객이 몰릴 것을 고려하고, 도서관 휴관일을 피할 필요도 있어 주말이 아닌 주중, 화요일과 수요일로 일정을 정했다. 이에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원들이 많이 참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번 경주도서관 탐방에는 연구회의 이용훈(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장, 도연문고 대표), 최진욱(울산북구 구립도서관 사서, 부산여대 사서교육원 강사), 박지영(한성대 문헌정보학부 교수), 양시모(구로 항동푸른도서관장), 김보일(한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정선애(『도서관운동가 엄대섭의 발자취를 찾아서-경주도서관 이야기』 저자)가 참여했다. 또한 엄대섭 선생과 30년을 동고동락하며 함께 도서관 운동을 한 이용남 선생(전 한성대 총장, 문헌정보학과 교수)과 현재 기적의도서관 등 독서운동을 이끌고 있는 안찬수 사무처장(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두 분도 함께 해 주셔서 모두 8명이 참여했다. 탐방의 기획과 일정 짜기, 실제 경주시에서의 안내와 설명 등은 모두 정선애 회원이 수고를 해 주었고, 경주시 내에서의 이동은 최진욱, 김보일 회원이 수고해 주었다. 탐방 내내 경주시 날씨는 화창했다. 봄을 맞아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여 기분까지 한층 상쾌해져 답사하기 좋았다. 2. 답사 첫날2.1 국립경주박물관 3월 21일 오후 국립경주박물관을 찾는 것으로 탐방을 시작했다. 1953년 엄대섭 선생이 울산에서 사립무료도서관을 접고 그 시설을 경주읍에 기부하여 읍립도서관 개관을 준비하면서 지역사회의 분위기를 살피고 지지를 받기 위해 경주박물관과 문화원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했다. 당시 함께했던 인사 20명이 「관우회」(회장 김종준)를 조직하여 도서관 설립을 지지하고 도서를 수집하는 등 많은 역할을 했으며, 그 가운데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장 진홍섭, 금속공예가 김종준, 민속공예가 윤경렬 선생이 있었다.
그들은 1959년 경주시립도서관(1955.9.1.자로 경주읍이 시로 승격)이 독립건물을 신축하자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독서회를 이끌며 도서관 운영에 기여했다. 엄대섭 선생은 도서관 운동을 전개하면서 단지 도서관계 내부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사회 다양한 분야 인사들과 적극 교류함으로써 도서관 운동의 힘을 확보하고, 유용한 운동의 성과를 만들어 낼 줄 아는 분이었다. 경주시에서는 그러한 교류와 실천의 중심에 있던 국립경주박물관을 우선 찾은 것이다.
마침 국립경주박물관은 2023년 1월 문화재 수장고를 개축하여 신라와 불교문화 관련 도서관 ‘신라천년서고’를 개관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 일행도 천년서고를 방문하여 새롭게 단장한 멋진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최근 도서관 공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박물관 안에 마련된 도서관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곳에서 우리 도서관사연구회 회원인 국립중앙도서관 조혜린 사무관 등이 번역한 『도서관, 박물관, 기록관의 연계·협력; 리키비움과 지식기반 만들기』 (이시카와 데쓰야 등 엮음, 도서출판 한울, 2021)을 만나서 더욱 반가웠다.
이어 박물관 전시를 둘러보았는데, 다들 오래 전 박물관과는 전시 내용이나 방식이 크게 발전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 관람 후에는 박물관 담장 바깥에 있는 고청(古靑) 윤경렬 선생 기념석을 찾았다.
경주 사람들은 신라의 정신을 계승한 윤경렬 선생을 매우 존경하고 추앙하여 “마지막 신라인”이라고 칭송하며 기념비도 세우고, 기념관도 건립하였다. 경주에서 엄대섭 선생은 이런 분들과 교류하며 도서관 건립과 운영에 열정을 보이셨다는 점에서 후배들로서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그러나 고청 선생에 대한 경주 사람들의 실천적 칭송의 현장에서 엄대섭이라는 뛰어난 선배 도서관인을 우리는 어떻게 모시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안타깝고 씁쓸한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 도서관 운동 선배들을 제대로 모시게 될까?
2.2 고청기념관
곧바로 경주박물관과는 불과 1.3㎞ 정도 떨어져 있는 고청기념관으로 갔다. 이곳에서 엄 선생과 윤 선생과 함께했던 김윤근 선생을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엄대섭 선생과 고청 윤경렬 선생의 인연은 1953년 엄 선생이 경주읍립도서관을 준비하던 시절 관우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서로 뜻이 맞은 두 분은 평생을 동지로서 교류하였다. 윤경렬 선생은 도서관 설립을 지원하는 ‘관우회’를 조직해 활동했고, 경주시립도서관 건물 신축 후에는 독서회를 이끌었다.
1961년 윤경렬 선생이 경주박물관에서 운영을 맡고 있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가 박물관 사정으로 운영이 어렵게 되자 야외현장 수업으로 이어가며 폐교 위기를 맞았다. 이때 엄 관장의 뒤를 이은 제2대 김종준 관장의 배려로 1962년부터 1975년까지 14년간 도서관 시청각실에서 ‘경주시립도서관 어린이향토학교’라는 이름으로 운영했다. 이처럼 윤경렬 선생과 엄 선생, 경주시립도서관은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윤경렬 선생은 도서관 건립과 운영에도 크게 도움을 주었다. 특히 경주시립도서관 독서회 배지와 마을문고 배지를 도안해 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기념관 공간이 협소하여 배지 도안 등을 전시하지 않아 직접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기념관 전시품 중에는 윤경렬 선생이 작사하고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경주박물관학교 교가 악보 원본이 있었다. 경주시립도서관 어린이향토학교 시절에는 마지막 부분의 ‘박물관학교’를 ‘도서관학교’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고청 선생이 생전에 거주하시던 댁은 기념관 바로 옆에 있는데 이 집을 현재 ‘고청생활관’으로 운영하면서 고청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1958년부터 경주도서관 독서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윤경렬 선생의 영향을 받아 경주시립도서관 독서회와 어린이향토학교를 이끄는 등 도서관과 인연을 이어 왔던 김윤근 선생은 우리 일행에게 예전 엄대섭 선생과 윤경렬 선생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들려주셨다. 특히 김 선생이 정선애 회원에게 그간 보관해 온 자료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70년 만에 경주도서관 역사를 발굴하고 정리해 책으로 출간할 수 있었다.
김윤근 선생이 경주도서관 독서회원으로 활동하던 때부터 보관해온 자료 50여 점은 앞으로 경주시립도서관 70년을 맞아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탐방을 통해 우리 회원들도 그중 몇몇 자료를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빛은 바랐으나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그 당시 자료를 통해 70년 전 경주읍립도서관에서 시작해서 도서관을 통한 문화 운동에 앞장섰던 선각자들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2.3 경주중앙도서관 이어서 고청기념관에서 5㎞ 정도 떨어진 사정동 경주중앙도서관을 찾았다. 지금의 경주중앙도서관 자리는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부터 1936년까지 경주역사(慶州驛舍)가 있던 자갈밭이었다. 그곳에 엄대섭 선생이 1959년 경주시립도서관을 신축해 개관한 이후 1976년까지 이용되었다. 1976년 삼성재단이 중앙도서관으로 재건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53년 엄대섭 관장은 경주읍사무소 회의실 한편에 경주읍립도서관을 설립 운영하면서, 도서관 신축을 위해 다방면으로 애를 쓰고 다녔다. 결국 경북도청을 직접 찾아가서 공무원을 설득하고 이해시켰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도지사실 입구에 책을 한 지게 져다 놓고 시위를 하는 등 불굴의 의지로 국비를 받아 경주시립도서관을 신축했던 곳이다.
당시 신축도서관 설계는 파리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중업 건축사가 맡았는데 우리 전통 건축양식을 반영하여 설계하고, 최신 공법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거기에서 엄대섭 관장은 학생들 공부방 구실을 하는 일반열람실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각 계층별 열람실에서 자료를 이용하도록 하고 독서회를 운영했다. 향토자료실을 두어 경주의 문화재를 전시하고 연구를 뒷받침하고자 했으며, 시청각실에서는 문화 예술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시민의 교양을 함양하고자 했다. 특히 경주도서관 독서회는 책에서 읽은 내용을 실천하여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도록 훈련했다. 현재 공공도서관이 지향하고 있는 바를 이미 그 당시부터 추진했던 것이다.
한편 경주시립도서관은 우리나라 민중들에게 지식을 대중화한 산실이기도 하다. 엄대섭 선생이 창안한 마을문고는 경주시립도서관 순회문고에서 비롯되었다. 농어촌 순회문고가 독서 운동으로 효과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경주 오릉 근처 탑마을을 비롯하여 대여섯개 마을에 주민들이 자주 자립적으로 운영하는 소규모 도서관을 설치하여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1961년부터 전국적인 운동으로 전개하였다. 제1호 마을문고가 설치 운영되었던 박동진 선생 사랑방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으나 가족이 거주하고 있어 이번에는 찾지 않았다.
1962년 엄대섭 관장은 마을문고를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경주도서관을 떠났다. 이어 제2대 관장을 맡은 김종준 선생마저도 엄 선생 권유로 1966년 7월 마을문고 운동에 합류하기 위해 떠나게 되었다. 그 이후 도서관은 시청 공무원들이 맡아서 운영하면서 당시 여느 도서관들과 같이 입관료를 받고 학생들 공부방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초기 엄대섭 관장이 추구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1976년에 삼성재단이 동양방송·중앙일보 개국 11주년을 맞아 전국 11개 시에 도서관을 건립해서 기부하였다. 이때 경주에도 지원이 있어 기존 시립도서관을 헐고 재건축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삼성재단이 지원한 도서관들은 모두 ‘중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따라서 이 도서관도 경주중앙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도서관 사무실에는 당시 중앙일보에서 경주시에 도서관을 기증한다는 기증서가 지금도 걸려 있다.
아쉽게도 엄 관장이 경주의 상징으로 탑층을 짓고자 했던 곳은 신축으로 흔적이 없어졌고, 어린이 도서실을 짓고자 했던 예정지에는 1979년 서라벌문화회관이 들어서고, 독서회원들과 직원이 조성한 화단은 콘크리트로 덮혀 주차장이 되었다. 어르신들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알게 된 옛 경주도서관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안타깝다. 1983년 어느 날 엄대섭 선생은 일본 사립 쓰루가와(鶴川)도서관 나미에 켄(浪江 虔) 선생과 야마나시(山梨)현립도서관 나카쿠라 시게루(中倉 茂) 선생 등 일본 도서관 인사들과 경주시립중앙도서관을 방문했던 사진이 있다. 이때 ‘공공도서관은 공부방에서 탈피하라, 입관료 폐지’를 부르짖으며 실천했던 경주중앙도서관이 다시 공부방처럼 변한 것을 본 엄 선생의 마음은 어땠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도 도서관에는 일반열람실이 남아 있었다.2.4 경주읍사무소 터
다음은 1953년 최초의 경주에 공립공공도서관이 설립되었던 경주읍사무소 터를 방문하기로 했다. 지금은 교통이 복잡한 화랑로 KT삼거리에 경주읍사무소와 읍립도서관이 있었다. 읍사무소 도서관 자리는 도로가 되었고 회의실로 사용하던 곳은 상가가 되어 약국과 안경점이 들어와 있다. 당시 개천이라 불렸다는 경주읍성해자는 복개되어 상가로 바뀌었다. 읍사무소 왼쪽에는 목재소와 여관이 있었다고 하는데 역시 도시개발로 지금은 상가와 금융기관이 들어섰다. 맞은 편 경주교회는 그 당시보다 더욱 큰 교회가 되어 지금도 건재하지만, 당시 한옥이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그 옆 경주극장도 당시에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하는 지역문화회관의 역할까지 했으나 지금은 현대식 상업건물로 바뀌었다.
경주시 도서관 역사에 있어, 나아가 전국에서도 처음으로 읍 단위에서 공공도서관이 설립되었던 자리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경주시립도서관 개관 70년을 맞아 지금 그곳에 표석이라도 설치하고자 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다음에 경주를 찾았을 때에는 그곳에 ‘경주읍립도서관 터’라는 표석이 서 있기를 기대한다.
- 이 답사기는 한국도서관사연구회 경주도서관 답사팀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서 정선애 씨가 정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