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역사문화 발굴과 보존, 계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경주시대’는 창간을 맞아 ‘경주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를 기획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로 힘들었던 1950년대 경주시민들에게 지식의 장, 공부하는 장으로 기능을 했던 경주도서관(당시 경주읍립도서관)의 설립과정과 역할, 도서관을 위해 헌신한 엄대섭 선생의 발자취를 준비했다.[편집자 주]경주시민의 공동서재 공공도서관(2)경주의 지역 특성을 반영한 도서관경주시립도서관은 임시 개관? 경주시립도서관 자료를 보면서 가장 궁금한 부분이 ‘임시 개관’이라는 것이다.  1953년 설립부터 1959년까지 6년이 넘도록 읍사무소와 시의회 회의실 더부살이에서 벗어나 도서관 독립건물을 완공하여 숙원 사업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경주시립도서관 안내》와 ‘도서관 이전 안내 말씀’에서 ‘임시 개관’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 사유는 시립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장서와 기자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서는 국내도서 1천 5백 권, 외국서 2천 권 등 총 3천 5백 권을 소장하고 있으나, 낡고 일본어로 된 책이 많아 시민들이 읽을 만한 기본 장서를 갖추지 못하여 정식 개관을 못 하고, 내년에 시에서 예산을 적절히 배정하여 도서를 보충할 것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그리고 ‘임시 개관 중에는 입관료를 받지 않습니다.’ ‘임시 개관 중에는 신문 잡지만 보여드립니다.’라는 안내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정식 개관 후에는 입관료를 받고, 지금 당장은 신문 잡지 외 도서자료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식 개관 행사는 언제 있었으며, 입관료와 자료대출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김윤근 선생께 문의하니 개관식과 입관료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당시 직원으로 근무했던 정재영 선생께 알아보니 임시 개관 후 별도 개관행사는 없었고, 임시 개관도 자주 이용하는 문화계 인사 몇 사람이 모여 간단한 자축으로 개관식을 대신했으며, 안내문과 달리 처음부터 무료로 도서 대출도 하고 정상 운영을 했다고 한다. 자주 이용하던 문화계 인사들이란 관우회 회원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그는 ‘엄 관장님 도서관 운영철학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 누구나 무료로 책을 볼 수 있도록 하자고 하셨기 때문에 돈은 한 푼도 받은 적이 없어요. 시에서 내려오는 도서관 운영 보조금은 형편없이 열악했지요. 그러나 도서관은 무료 이용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두 무료로 이용했어요. 엄 관장님의 도서관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읍사무소 시절 도서관도 시설이나 도서 전부를 관장님 개인이 기부해서 운영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안내문과 실제 운영이 달라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후 공식 개관은 왜 없었을까? 단지 개인적 추측으로 ‘임시 개관’이라 했으나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정상 운영하면서 시청으로부터 도서구입비와 기자재를 지원받아서 다시 개관식을 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청도 빠듯한 살림으로 도서관 예산을 추가로 받을 수 없음을 알고 한발 물러선 것이 아닐까?‘임시 개관’뿐 아니라 입관료, 자료이용 등 이용 안내문과 실제 운영이 다르게 된 것에 대하여 엄 관장이나 김종준 선생 같은 핵심 인물은 그 사정을 알고 있겠으나, 이제는 원인을 찾기 어렵고 궁금증만 남았다. 경주시의 도서관에 대한 지원은 매우 열악했다고 한다. 도서구입 예산이 없어서 신축하고 나서 건의하여 겨우 조금 지원받기는 했으나 금액이 얼마 되지 않았다.    엄 관장과 정재영 선생이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골랐는데 한 번에 10권 정도, 많으면 20권 정도 구입하고, 누구든지 단 한 권이라도 기증하면 감사하게 받았다. 김상규 선생은 도서관 회원증을 발급받으면서 집에 있는 도서를 기증하여 대출 우대회원이 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회원증을 발급할 때 도서를 별도로 수집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누구나 자발적으로 기증해 주면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 시청으로부터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으나 뜻있는 독지가의 지원도 있었다.    경주읍립도서관 시절부터 장서 수집에 크게 기여한 인물은 전남방직 임원 이종기 씨다. 매달 자신의 수입 일부를 도서구입비로 꾸준히 지원하고,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경주시립도서관 신축 개관 때는 환등기, 녹음기 같은 기자재를 마련해 주는 등 고향의 후진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9년에 신축한 경주시립도서관 본관(황성동) 서고에 ‘영국문고永國文庫’라 하여 이종기 씨가 기증한 문고가 있다. 경주도서관뿐 아니라 엄 회장이 마을문고 운동을 하던 시절에도 고향에 문고 설립하기에 동참하고, 이사를 맡는 등 도서관 운동에 적극 협력했다. 경주시립도서관에는 ‘영국문고’ 외에도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 Korea’에서 기증한 도서가 있었다. 부족한 장서 일부를 이렇게 외부 개인이나 단체가 받쳐주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무료로 도서관을 이용하도록 개방했다.   김윤근 선생은 경주시립도서관이 시청 소속이지만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해서 그런지 도서관 운영에 전혀 간섭하지 않았고, 엄 관장도 시청 공무원이든 누구도 개의치 않고 거침이 없었다고 한다. 도서관 설립과 운영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라 공익사업으로 국가나 지방행정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해야 할 시설이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시 정부나 지방행정에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엄 관장 같은 개인이 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떠나서 엄 관장 성격 특성상 관청이라 해도 불필요한 간섭이나 관여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서관 운영에는 시청의 간섭을 받지 않았으나 지역사회와 매우 친화적이었다. 경주읍립도서관 개관 당시에는 지역사회 지식인들이 관우회를 결성하여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도서관 신축 때에도 독서회원을 중심으로 봉사 활동이 있었다. 경주시립도서관에 비치된 ‘영국문고’는 1987년 경주중앙도서관에 기증되었으나 1989년 경주시립도서관이 신축된 후에 옮겨갔을 것으로 보인다. 《경주시립도서관 안내; 단기 4292년 8월 26일 신축 낙성 기념》 경주시립도서관을 신축 이전 개관하면서 발행하여 배포했던 《경주시립도서관 안내; 단기 4292년 8월 26일 신축 낙성 기념》 책자는 마치 사회운동 단체의 계몽지 같다. 물리적인 형태는 가로 12.5㎝, 세로 18.5㎝ 갱지에 철필로 긁어서 등사한 16면(표지포함)짜리 작은 책자지만 인상적인 것은, 도서관 이용안내서에 시민들이 ‘꼭 아셔야 할 일’ ‘도서관 토막상식’이 8면과 9면에 들어있어서 주민들을 향한 도서관 교육적 기능도 담았다는 점이다.    시립도서관은 학생들 공부방이 아니라 세금으로 운영하는 시민의 사랑방으로 시민이 주 고객이라는 설명과 당시에 참고자료실에서 참고자료와 독서상담에 응하겠다는 내용, 글을 모르는 사람도 도서관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엄 관장은 당시에도 공공도서관이 학생들 공부방으로 이용되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확실하게 가졌다.    토막상식에는 전세계에서 공공도서관 입관료를 받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으며, 학교시설에 비해서도 공공도서관이 많이 열악하다는 내용과 외국의 도서관 현황표를 만들어 비교하기도 했다. 배포 대상이 일반 시민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여 쉬운 말로 지역사회에 공공도서관을 제대로 이해시키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고, 관청을 향해서는 존중하면서 은근히 압박하는 느낌도 있다.    실제 관청에서 그다지 도움을 받지 못했으나 공을 치하하여 기관장이나 관리자들의 협조를 끌어내고, 건의할 내용이나 개선점 등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다. 도서관 이용안내서라기 보다 마치 도서관 운동 계몽지 같고, 문체며 전달방식이 <대한도서관연구회> 시절 회보 《오늘의 圖書館》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당시에도 엄대섭 선생은 역시 도서관 관장이면서 도서관 운동가였다. 《경주시립도서관 안내》 책자 원문은 국한문이 혼합되어 있으나 읽기에 불편한 점을 생각하여 가급적 원문을 살리면서 옮겨 적었다. 마지막의 ‘도서관 이전 안내 말씀’은 별지로 된 이전개관 안내문이다.   글=정선애 작가 정선애 작가는? 대학시절 마을문고 운동 동아리활동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도서관학과 4학년 때 엄대섭 회장을 직접 찾아뵙고, <대한도서관연구회>에서 도서관운동 조수로 일했다. 그 후 <대한도서관연구회> 에서 훈련받고 일한 자부심을 가지고 서울시 새마을이동도서관 사서, 한국도서관협회, 학교도서관 등을 거쳐 2006년부 터 관악구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2022년 퇴직했다. 2021년 엄대섭 선생의 공공도서관 개혁운동 이야기 「지금 쓰지 않으면 잊혀질 이야기」를 썼다.
최종편집: 2025-04-30 23: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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