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경주이야기(5)] 여왕의 나라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왕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라시대뿐이다.
박혁거세의 즉위(BC57)로부터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935)하기까지 거의 천년, 정확히는 992년간을 지킨 나라가 신라이다. 모두 56명의 왕이 통치하였는데, 초기에는 박, 석, 김 세 성씨가 계승하였으며, 17대 내물왕부터는 53~55대까지 박씨가 계승한 경우만 빼놓고, 56대 경순왕까지 김씨가 단독 계승하였다. 왕을 일컫는 말은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왕으로 바뀌었다.
22대 지증왕의 경우 지증마립간 이었다가 즉위 4년째 되던 해에 지증왕으로 바꿔 불렀다. 56명의 신라 왕 가운데에는 여왕도 있다. 27대 선덕여왕·28대 진덕여왕·51대 진성여왕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왕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라시대뿐이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유일한데, 왕위 계승을 통하여 여왕이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른 경우이다.
우리 역사상 여왕의 존재가 신라가 유일한 이유가 뭘까? 신라가 완전한 남녀 평등한 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일까? 조선시대보다 신라시대에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것은 사실이나 신라 사회에서 여왕이 가능했던 이유는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 제도의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 사회는 최고 귀족과 왕족인 진골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왕의 직계 가족과 왕궁에 거주하는 자를‘성골’이라 하여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선덕여왕의 경우 진평왕의 딸로, 아버지가 아들없이 죽자 화백회의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고, 선덕여왕이 후사없이 죽자 사촌 사이인 진덕여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진덕여왕 역사 후사가 없었으므로, 진골인 김춘추가 왕위에 올라 태종무열왕이 되었다. 이후 성골에게 국한하여 왕위를 계승하던 신라 사회의 전통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이 되었다. 진성여왕의 경우에는 정강왕이 후사 없이 죽자 누이인 그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선덕여왕과 진덕여왕 시대를 연 두 인물
태종무열왕 김춘추김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은 선덕여왕의 여동생이다. 즉 김춘추는 선덕여왕의 조카인 셈이다.
김유신삼국 통일 전쟁과 비담의 난을 승리로 이끌었다. 성골 귀족들에게 배척 당하던 김춘추와 김유신은 선덕여왕을 지지·옹립하였으며,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와중에 선덕여왕이 죽자 김유신은 비담의 난을 진압하였으며, 비로소 진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