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경주이야기(4)] 황금의 나라신라는‘금(金)’과 인연이 많다. 신라 사람들은 금을 좋아했다! 경주 김씨 시조인 알지가 금 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일까? 신라는‘금(金)’과 인연이 많다. 왕실의 무덤에서는 금관, 금허리띠, 금팔찌, 금목걸이, 금동 신발 등 고급 장신구가 쏟아져 나왔다.  23대 법흥왕(514~540) 때에는“진골의 말 수레와 말안장을 금, 은, 옥으로 만든 장신구를 금지한다”고 했을 정도이니, 신라인의 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각별했던가보다.  특히 신라의 금관은 우리나라 고대유물 가운데에서도 단연 눈을 끄는 유물이다. 그 화려함과 독특한 디자인 때문이다. 한 이슬람 학자는“신라에는 금이 많으며, 무슬림(이슬람교도)은 일단 이 나라에 들어가면 정착하게 된다”고 했다. 중앙아시아를 넘어 이슬람 세계와도 활발하게 교역을 하였던 신라가 당시, 서역에서는 황금의 나라로 소문이 났던 것이다. 화려한 황금유물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보자.   <금관은 머리에 썼을까?>금관의 무게는 대략 1kg, 금 100돈의 양이다. 평소에 머리에 쓰고 다니기엔 다소 무거워 보인다. 특별한 행사 때만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했는지, 또는 무덤 부장품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나무와 사슴뿔을 장식하는 기본 구조가 북방아시아의 스키타이족 문화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과의 관계가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금 1kg으로는 3300m의 길이에 이르는 금실을 만들 수 있고 계속 두드려 펴면 종이보다 얇게 가공할 수가 있다. 신라 금공예 기술은 현대 기술로도 풀기 어렵다고 한다. <김알지 탄생 설화>탈해왕 9년 재상 호공이 새벽에 시림(始林)에서 닭울음소리가 들려 기이하게 여겨 나가보니 해묵은 고목 아래 하얀 닭 한마리가 울고 있고 그 옆에는 금빛 궤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탈해왕에게 아뢰었다.  탈해왕이 직접 그 궤를 열어보니 궤 속에는 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탈해왕은 하늘에서 보내준 귀한 아기라 생각하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아기의 성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불러 태자로 삼았다. 또한 흰 닭이 울어 태자를 얻었다 하여 숲을 계림이라 불렀다.
최종편집: 2025-06-01 00: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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