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경주이야기(3)] 통일신라, 찬란히 빛나다.통일 후 신라 왕실은 더욱 강하고 화려해졌다 흔히‘통일신라’라고 하지만, 정작 신라인들은 나라이름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    일본학자들이 신라의 삼국 통일을 강조하면서 발해로 이어지는 고구려의 역사 의미를 단절시키고자 만들어낸 용어인 것이다. 최근에는 통일신라라는 말대신 발해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었다 하여‘남북국시대’라는 개념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통일 후 신라 왕실은 더욱 강하고 화려해졌다. 그 호화로움은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안압지의 유물은 왕실에서 사용하던 생활유물들이다. 그런가 하면 신라인은 신라가 곧 불국토라는 강한 신앙심과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남산에 이루어 놓은 불국토는 물론, 불국사와 석굴암 등은 이러한 신라인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이상향을 실현시킬 수 있는 당시 신라인들의 역량, 천년이 지난 지금도 경주 땅을 수놓은 그들의 업적은 찬란하다.   8세기 후반부터 신라는 중앙의 진골 귀족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심해지고 지방에서도 호족과 해상 세력이 성장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이 어려워진 농민들이 각지에서 봉기하였는데, 이런 혼란을 이용하여 세력을 키운 사람들이 후삼국을 세운다. 끝내 신라는 이와 같은 사회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하고, 56대 경순왕에 이르러 고려에 항복함으로써 천년 역사를 마무리 짓는다.
최종편집: 2025-06-01 00: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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