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경주이야기(2)] 왕국의 기틀을 다지며지증왕은 왕호도 마립간에서 왕으로 바꾸고 나라이름도 ‘신라’로 정하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작은 나라로 출발하여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두 나라가 손잡고 다른 한 나라를 공격하기도 하면서 강대한 국가로 성장한다. 고구려가 맨 먼저, 뒤이어 백제, 그 다음에 신라가 국가로서의 틀을 갖추고 세력을 키워나가는데, 신라는 내물왕 이후로 박, 석, 김이 번갈아 왕위에 오르던 시기를 벗어나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며 고대 왕국의 기틀을 착실히 다진다. 지증왕은 왕호도 마립간에서 왕으로 바꾸고 나라이름도 ‘신라’로 정하였다. 법흥왕 때에는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내며, 진흥왕은 고구려와 백제를 밀어 제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함으로써 신라의 위상을 한껏 높인다. 신라는 더 이상 한반도 동남부 변두리의 작은 후진국이 아니었다. 다른 두 나라를 통합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낸 것이다. 선덕여왕 때에는 당시 최고의 사찰 황룡사에 구층목탑을 세워 신라의 저력을 만방에 떨친다. 이후 신라의 비약을 경계한 고구려와 백제는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고, 신라는 당나라와 손을 잡고 삼국을 통일, 전쟁의시대를 끝낸다.
황룡사지
‘텅 빈 충만’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싶은 이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 황룡사가 창건된 것은 진흥왕(540-576) 때의 일이다. 불교를 받아들인 법흥왕 이후 신라왕들은 불교에 심취했다. 진흥왕은 말년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처럼 생활했으며, 왕비 또한 비구니가 되었을 정도이다.진흥왕이 새로이 궁궐을 지으려 하였는데, 마침 이곳에 황룡이 나타나자 절로 고쳐 지으면서 절 이름이 ‘황룡사’가 되었다. 왕의 궁궐이 아니라 부처의 궁궐이 된 셈이다.